내가 좀 어리바리해 보이는 면이 있다.
평상시엔 맹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 때문에 오해받는 일이 많다.
근데 나는 일할 때는 최대한 강단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그렇게 완벽해지려고 하다 보니 가끔 예민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게 주위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오해로 다가가기도 한다.
웃으면서 말 잘 듣게 생긴 애가 가끔 강하게 어필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어서 모두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모든 일감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몰리더라.
처음에는 그래, 다 받아주마 하고 내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밤늦게까지 내 일 네 일 가릴 것 없이 열심히 했다.
근데 그러다 보니 팀장이 되었고,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팀의 문제가 되었다.
'마케팅팀은 짬처리반'
내 친절한 태도가 불러온 그 동안의 오지랖이 타 부서에 그런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고,
컴퓨터 선 정리, 수리, CCTV 설치부터 본인들 영역의 오탈자 수정, 하다못해 엑셀 단순 DB 입력 작업 등
하나 하나를 당연시 여기며 우리 팀 밑에 직원에게 떠넘기는 수준에 이르렀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미생 오상식 과장이 그랬듯 내새끼 건드리지 마가 되려면 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걔는 못하고 너는 하니까. 역시 누구누구. 대단해. 치켜올리면서
온갖 잡무를 떠넘기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워낙 많이 겪다보니
방어적 태도가 어느덧 습관이 되었달까.
그렇다고 회사에서 사회부적응자처럼 욕을 할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고,
그저 할 수 있는거라고는 정색하고, 비꼬는 정도이긴 하지만
아무튼 최대한 방어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직원 누군가의 생일, 경조사, 퇴사에 대해서도
점점 이해타산적이 되고 무뎌지는 내 자신을 느끼고 가끔은 이런 내가 슬프기도 했다.
일이 익숙해질수록 사람한테 받는 상처가 크니까, 더 사람을 안 만나게 되고...
만나는 사람한테만 잘 하고 그러다 보니 내 사람은 너무 소수고...
나는 이러나저러나 사람들과 친해지는게 참 힘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내가 슬프지 않다.
어느 정도 세상 이치를 달관한 사람처럼 괜찮아지고 있는 것이다.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져서 그런가. 괜찮다.
왜 나는 행복하지 못 할까? 난 왜 이렇게 힘들까? 라는 생각들로
근 십 여년을 가득 지내보고 나니, 이제는 뭔가 상념을 덜어낼 길이 보인달까?
스트레스 덜 받기 위한 방법으로 상황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와, 또한 타인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저 사람은 왜 그러지,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으로
소중한 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나를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 나에게 괜찮냐고 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돌려까놓고 장난이었다고 퉁치는 사람들,
카톡으로 밤낮없이 고문하는 상급자들.
열심히 하려고는 하지만, 일부 기대에 못미치는 일부 부하 직원들.
열심히도 안하면서, 기대에도 못 미치는 일부 부하 직원들.
다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저 나는 내 영역을 지키며, 자만하지 않고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뿐이고,
이것이 직장이고 사회라고 생각하며,
최소한 지금은 이런 천태만상 군상의 집합 속에서 그저 묵묵히 노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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