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는 이스라엘의 정치인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의 정치 행보와 논란,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출생과 초기 생애
베냐민 네타냐후는 1949년 10월 21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벤지온 네타냐후는 유명한 역사학자로, 네타냐후의 정치적 사고와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네타냐후는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MIT에서 건축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82년에는 주미 부대사, 1984∼88년에는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거쳤구요.
정치 행적
네타냐후는 1988년 리쿠드(Likud) 당 소속으로 이스라엘 국회에 입성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996년 처음으로 이스라엘 총리로 선출되었으며, 1999년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정계를 떠났다가, 2003년 아리엘 샤론 총리의 연립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하면서 정치적 재기 발판을 다집니다. 이후 2009년부터 2021년까지 2번 째 총리직을 연임하면서 탄탄대로, 이스라엘 정치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의 가자 전쟁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와의 충돌을 겪었습니다. 네타냐후는 강경한 안보 정책을 추진하며, 하마스 전멸을 목표로 하는 군사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그의 극우 정권은 이스라엘 내외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은 거의 진전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이팔전쟁을 확전시켰고, 미국과 유엔 등 세계 다수의 나라에서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의 씨를 말리겠다는 생각인지 민간인들이 상당수 희생당하는 등의 모습이 세계언론을 통해서 보여졌습니다.
논란
네타냐후는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그리고 지금도 논란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의 강경한 안보 정책과 정착촌 확대 정책은 국제 사회와 팔레스타인 측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그는 여러 차례의 부패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이는 그의 정치적 입지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는 정치적 역량과 지지층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여러 번의 선거에서 승리하며 권력을 유지해왔습니다.
앞으로의 그는?
네타냐후는 현재도 이스라엘 정치의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의 안보 정책과 경제 성장을 높이 평가하며, 그가 이스라엘의 안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믿습니다. 반면, 그의 반대자들은 그의 정책이 중동 평화 프로세스를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네타냐후의 정치적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리쿠드 당을 이끌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부패 혐의와 논란이 그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그의 정책 방향과 중동 정세에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정치인이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정책과 행적은 이스라엘의 미래와 중동 평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저 역시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강경 정책에 반대하는 세계인으로써 그가 생각을 바꿔먹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마스가 당연히도 잘못되었지만, 그렇다고 네타냐후도 잘하는 것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아랍 사람들은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히틀러, 소련, 영국 등에서 핍박 받아온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들이 이를 못 견디고 세를 확장시켜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것이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스만 제국의 붕괴 이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유럽과 세계 각지에서 핍박받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목표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지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의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수용했으나, 아랍 국가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로 인해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마자 첫 번째 중동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여러 차례의 전쟁과 분쟁이 이어지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은 점점 더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안보를 유지하려 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측은 독립 국가를 향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의 휴전 협상이 있었으나, 실질적인 평화 협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양측의 충돌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닭이 먼저이냐, 달걀이 먼저이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팔레스타인 지역을 야금야금 점령했지만, 아주 먼 옛날에는 유대교가 이 지역을 차지했던 시절도 있었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공격했지만, 그렇다고 팔레스타인인 전체에 대한 공격은 옳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는 핍박을 겪었던 민족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들을 받아준 사람들을 오히려 내치고 핍박한다면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부디 이런 '못난 전쟁'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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