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는 집단을 이루게 되면 180도 돌변하는 생물이 있습니다. 바로 메뚜기 종족인데요.
(살짝 징그러울 수 있습니다. 곤충 벌레 많이 싫어하시는 분들은 나가주세요. ㅋ;)
아시다시피 시골 논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른 메뚜기는 보통 단독으로 살아가고, 다른 곤충들처럼 풀을 뜯어 먹으며 생활합니다. 그렇지만 이상 기후나 태풍으로 인한 홍수나 폭우가 발생해 풀이 잘 자라는 속도가 빨라지고 알을 낳기 좋은 환경이 되면, 메뚜기의 번식 주기도 빨라집니다. 그 결과, 같은 공간 내에 메뚜기 개체 수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반대로,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먹이가 줄어들어 남아 있는 풀을 찾아 모여드는 경우도 있죠.
황충 뜻
어찌 됐건 특정 환경 변화로 인해 메뚜기들이 1제곱미터당 스무 마리가 넘어서기 시작하면, 이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무리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먹을 것에만 집착하는, 심지어 동종을 포식하기도 하는 곤충으로 변모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일컬어 우리말로는 '황충', 영어로는 '로커스트'(Locust)라고 부르죠.
황(蝗)이라는 한자어는 떼지어 이주하며 농작물을 갉아먹는 메뚜기류를 두루 가리키지는데요. 아마 '황색할 때 황'을 생각하고 계시겠지만, 그게 아니라 역병을 뜻합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풀무치를 황충이라고 하였습니다.
무리를 이룬 메뚜기 떼의 규모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수십 수백억 마리의 개체들이 뉴욕시보다 넓은 1,000km² 이상의 면적을 이루며 이동합니다. 이때는 1제곱킬로미터당 8천만 마리가 분포하기도 합니다. 정식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1875년 네브래스카 주와 미주리 주 등지에서 발생한 로키산 메뚜기 떼는 캘리포니아 주보다 넓은 약 51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뒤덮을 정도였고, 한 추산에 따르면 개체 수만 3조 5천억 마리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이렇게 떼를 이룬 메뚜기들은 각 개체가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 먹어 치우는데, 개체 수가 워낙 많다 보니 하루에 약 13만 톤에 달하는 농작물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하루살이 생산량은 약 1만 톤입니다. 또 이들은 하루에 약 150km를 이동하는데, 1988년에는 서아프리카에서 남미 대륙까지 바람을 타고 약 열흘 만에 수천 km를 논스톱 비행으로 날아간 사례도 있죠. 그리고 소멸할 때까지 끝없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이들이 지나간 곳에는 식물의 흔적을 찾기 힘들고, 따라서 대기근의 원흉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도 메뚜기 떼의 출몰은 살아 있는 재앙으로 여겨졌죠.
그런데 사실 모든 메뚜기들이 황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1만여 종이 넘는 메뚜기들 중 약 20종만이 황충으로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사막 메뚜기, 호주 전염성 메뚜기,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풀무치로 알려진 이동성 메뚜기가 있습니다.
메뚜기는 왜 황충이 될까?
그렇다면 도대체 평범한 메뚜기들이 왜 무리를 형성하면 황충으로 변하는 걸까요? 사실 이에 대한 연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동물학자인 스티브 심슨 박사는 메뚜기가 서로 모여들게 되면 자연스레 신체 접촉을 하게 되는데, 특히 뒷다리에 있는 신경과 연결된 감각모를 건드리면 메뚜기가 황충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하지만 어떤 신경 전달 물질이 이런 변화를 촉진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2009년, 심슨 박사와 연구진들은 메뚜기의 13가지 주요 호르몬 중 유독 세로토닌을 투여한 개체들만 무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추가로 발견하게 되죠. 실제로 황충이 되면 평상시보다 체내 세로토닌의 농도가 세 배까지 높아집니다. 물론, 이는 사막 메뚜기의 사례이며 호주 전염성 메뚜기는 더듬이 자극에 의해 황충으로 변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성충 시기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메뚜기 떼는 이동하면서 계속 알을 낳는데, 이 알에서 깨어난 약충 역시 서로 신체 접촉을 하면서 황충으로 변하죠. 메뚜기 떼가 한 번 출몰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녀석들의 DNA는 동일함에도 특정한 상황에서 그 형태와 행동이 이렇게 극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꽤 신기한 현상입니다. 오죽했으면 1920년대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조차 이 둘이 서로 다른 종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 말이죠.
이처럼 특정 환경에서 생물의 형태나 행동이 바뀌는 현상을 '표현형 가소성'이라고 하는데, 사실 자연계에서 보기 드문 현상은 아닙니다. 한 예로, 어떤 물벼룩은 포식자가 많은 환경에서 뾰족한 뿔과 더 긴 꼬리를 갖추게 되죠. 또, 아프리카 사바나에 서식하는 한 나비는 우기와 건기 때의 모습이 다르며, 뉴멕시코 쟁기 개구리의 올챙이 역시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동족을 잡아먹기 위해 몸집과 입이 커지는 표현형 가소성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는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에서도 나타나는데, 어떤 수초는 공기 중에 노출됐을 때 잎의 모양과 물속에 잠겼을 때의 모양이 완전히 다릅니다. 물론 메뚜기처럼 짧은 시간 만에 형태가 바뀌는 것은 이 사례들 중에서도 꽤 극적인 편에 속하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밝은 색으로 변하면 새 같은 천적들에게 노출되어 금세 잡아먹힐 것 같은데, 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요? 답은 독소에 있습니다. 캐나다 콘코르디아 대학교의 환경 생물학자인 엠마 데스플레 교수는 메뚜기들이 황충으로 변하면, 평소 혼자 활동하던 시절과는 달리 히오시아민 같은 알칼로이드 계통의 독소를 지닌 식물들을 선호하며 찾아 먹는다고 주장했죠. 쉽게 말해, 새들에게 메뚜기 떼는 더 이상 먹이 노다지가 아닌 독소 천지였던 셈입니다. 실제로 남아시아 국제 습지 위원회의 조류 학자인 아사드 라흐마니는 2019년 인도에서 메뚜기 떼가 발생했을 때 그 지역에서는 새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밝혔죠.
그리고 메뚜기가 황충으로 변하면서 바뀌는 것은 색깔만이 아닙니다. 더 효율적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몸집도 작아집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뇌는 커진다는 것입니다. 2010년 영국 레스터 대학교의 곤충 신경 생물학자인 스티븐 로저 박사는 사막 메뚜기가 황충으로 변했을 때 전체적인 뇌의 크기가 약 27%가량 커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요,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멀리서 먹이를 감지하는 시각과 후각과 관련된 부위는 단독 생활을 하는 메뚜기가 더 컸지만, 학습과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부위는 집단을 이루는 황충이 더 컸다는 사실입니다.
좀 의아하지 않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황충이 마치 좀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다른 개체들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뇌가 더 작아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로저 박사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그는 메뚜기가 떼를 이루기 시작하면 먹잇감이 부족해지고, 그 결과 동종을 잡아먹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런 대혼란의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보다 고차원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뇌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에 해당하는 부위가 커졌을 거라고 밝혔죠. 또,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먹이를 찾는 것 자체가 기존보다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뇌의 크기 변화가 나타났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특정 메뚜기 종들만 어쩌다 황충으로 변하게 되는 선택 압박을 받게 된 걸까요? 이에 대해 지난 2017년 텍사스 A&M 대학교의 곤충학자인 송호준 박사는 사막 메뚜기의 경우, 황충이 된 원인이 과거 790만 년 전 벌어진 사하라 사막의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당시 사하라는 초목이 우거져 있었는데, 아프리카 대륙의 북상으로 테티스해가 사라지면서 사하라 전역이 점차 건조해졌습니다.
메뚜기들은 먹이가 부족해졌고, 송 박사는 이런 환경 속에서 떼를 이루게 되면 동종 포식의 기회가 제공돼 배고픔을 달랠 수 있고, 새로운 먹이를 찾아 나설 때도 집단으로 이동하는 편이 유리했기 때문에 사막 메뚜기들에서 표현형이 변하게 되는 진화가 일어났을 거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사하라가 사막화된 이후 약 600만 년 전 이곳을 떠나 남쪽으로 2,500km 떨어진 다육식물과 관목이 많은 지대로 이주한 사막 메뚜기의 아종은 이곳에서 먹을 것이 기존보다 풍부했기 때문에 조상 종처럼 황충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의 건조지대, 즉 먹이가 부족한 곳에 정착한 남아메리카 메뚜기는 조상 종인 사막 메뚜기의 형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황충으로 변해 농작물을 파괴하는 습성이 나타나죠. 이는 사하라의 사막화가 사막 메뚜기를 황충으로 변하게 만든 간접적인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황충 퇴치방법 연구
사실 과학자들이 이렇게 메뚜기 떼를 연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을 퇴치하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곰팡이 균을 활용한 방제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메뚜기들이 무리를 이룰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대부분 이들의 장내 세균에서 만들어지는데, 2014년 중국 농업대학교의 왕평 박사는 특정 균류가 이 세균의 생장을 억제해 메뚜기의 세로토닌 수치를 낮춰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군중 속에서 돌변하는 메뚜기 떼와 같은 자연 현상은 우리가 군중 속에서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깊이 고찰해 볼 만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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