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합의 이후 금리 인하기, 세계 1위 일본을 만들다.
플라자 합의 때 일본의 금리는 5퍼센트였는데, 인하폭을 2.5%까지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2%까지.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낮은 금리가 됐습니다.
역시, 1~2년 전까지 우리나라 저금리 호황 시대처럼
기업이나 사람들이 돈을 엄청 빌리게 되었죠.
미국의 바람대로 미국의 무역 적자도 줄기 시작했습니다만,
이 협약으로 이득을 본 것은 미국 뿐만이 아니죠.
낮은 금리로 시장에 어마어마하게 돈이 풀리면서 일본 경제도 유례없는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결국 잃어버린 20년을 예고하는 버블 경제 시대가 이때 열리게 됩니다.
수출과 내수시장 활성화로 일본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게 됐고,
정부는 금리를 낮추는 정책으로써 그 기업들을 지원했고,
이렇게 키워나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기업은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청년 인구가 막 느는데도 일자리가 더 빨리 느니까 청년 1명당 일자리가 한 15개쯤 되는 거예요.
사람보다 일자리 수가 더 많은 거예요.
버블 시대 일본 회사는 신입 직원이 입사하기도 전 하와이 등으로 장기 여행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합격하고 나서 혹시 도망갈까 봐 일단 여행을 보내놓고 보는 거라네요.
다른 회사 면접 보지 말고 일단 하와이 가 있어. 이런 개념이죠. ㅋㅋ
취업문이 활짝 열렸던 버블 경제 시기에는 기업들의 인재를 데려가기 위한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습니다.
면접만 봐도 돈을 줬구요. 1만 엔에서 한 5만 엔 정도를 줬다고 하네요.
취직 안 하고 면접만 보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을 고급 술집에 데려가서 값비싼 술을 사주면서 우리 회사 들어와 이렇게 하는 회사들도 있었습니다.
좋은 인재를 잡아두려고 하다 보니까 연봉도 점점 높아졌고,
신입사원들은 신났죠. 반대로 이제 기업 입장에서는 인재 구하기 힘들고.
낮은 금리 때문에 내수 시장이 확대되었으나, 이것이 일본의 문제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기 쉬워진 일본 기업과 시민들은 이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여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금리가 2~3%로 낮을 때 부동산 가격이 10~20%씩 상승하는 추세여서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가 안전하고 수익률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주로 수도권 도쿄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1984년을 기준으로 도쿄의 땅값은 6년 사이에 3배로 상승하였고, 일본 전체의 땅값도 평균 2배 상승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도쿄의 세타가요구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1987년에 1억 엔에서 시작해서 4년 후에는 3억 2천만 엔으로 3배 이상 상승하였습니다. 91년에는 도쿄의 번화가 긴자 지역에서 기름 맥주 총판장이 있었던 메이저 빌딩. 여기가 가장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곳이었는데, 땅값이 평당 12억원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일부 금융 기관은 기존의 가치보다 더 많은 금액을 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예로, 집 값이 1억 원일 때 120%인 1억 2천만원까지 해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당연히' 상승할 것까지 고려해서 빌려주는 것이죠.
부동산의 무한증식, 일본 버블경제의 끝판왕
이렇게 은행에서 꼼수를 동원해서 원래 빌리려던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니까 남는 돈으로 또 다른 부동산을 사는 게 가능했습니다.
거기다 이렇게 산 부동산을 은행 담보로 받아서 또 다른 부동산을 사고,
새로 산 부동산을 담보로 또 부동산을 계속 늘려가는 방식으로 투기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제한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 가능한 상황인 것이죠.
은행끼리 경쟁이 붙어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2%의 금리로 해주겠다 라고 어느 은행에서 하면 다른 은행에서는 1.5%의 금리로 해주겠다. 이런 식으로 해서 경쟁을 했었구요.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이 되면 반드시 여기에는 부작용도 있죠.
도쿄의 땅값 집값 거기에다가 외곽집까지 집값이 점점 오르니까 집이 없는 사람들은 벼락거지가 된 거죠.
일반 서민들은 도쿄에서 사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고,
그때 일본의 수도인 도쿄는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도시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도쿄 땅을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
또 도쿄 중심가의 황궁을 팔면은 캘리포니아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그땐 넘쳐났습니다.
금리를 낮추고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고 하다 보니까 실질 gdp의 증가율도 4.7%, 6.8% 이렇게 쭉 오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경제도 좋아지고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자신감이 있어서 이것을 극단적인 버블이라고까지는 생각을 못했고
또 일본 정부에서는 금리를 내렸으니까 일본 기업들이 기술 투자하고 설비 증진하고...
이렇게 하면서 경제가 더 발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업들까지 부동산 투기에 나선 거죠.
이런 부동산 투자가 일본 국내에서만 이루어졌느냐? 아니죠.
해외에서도 이루어졌고, 그 중 한 곳이 미국이었습니다.
하와이 땅도 많이 샀고, 특히 와이키키 해변의 호텔과 콘도의 육십 프로가 일본인 소유였다고 합니다.
하와이는 조금 그 아픈 역사가 있죠.
진주만 공습 당했던 땅이니까, 이제 일본인의 땅의 일부가 되니까
조금 더 화가 났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고
그리고 일본 기업들은 1986년을 시작으로 뉴욕의 티파니 빌딩, ABC 본사 등
미국 중심가에 있는 상징적인 건물, 즉 랜드마크들까지 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대표적인 빌딩을 사들이면서 미국 전역을 더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당시 넘쳐나는 돈을 주체할 수 없었던 일본 버블 경제는 이렇게 해외까지 뻗어나간 거예요.
그 뿐 아니고, 미국 대표 영화 제작사인 콜롬비아 픽쳐스를 매입하기도 했고, 특히 주식 열풍은 더 심했습니다.
닛케이 지수가 1980년에는 6천엔이었는데, 1989년 말에는 3만 8천엔 선까지 올랐죠.
9년 만에 대략 6배 정도가 올랐습니다.
엄청나게 가파른 상승세네요. 주가가 매일 같이 오르니까 주식을 안할 이유가 없겠죠.
이렇게 주식 열풍이 불어서 일본의 주가가 팍팍 뛰니까 기업의 시가총액도 팍팍 뛰게 되고,
결국 1989년에는 일본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합계가 뉴욕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 합계를 누르고 세계 1위가 됩니다.
이야, 대단합니다. 일본 기업들이 전 세계 기업 시가총액 순위를 다 차지하고 막 이랬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죠.
세계 시가총액 20위 안에 일본 기업이 대거 포함됩니다.
세계 시가총액 20위 안에 드는 기업 중 무려 14개가 일본 기업이었습니다.
근데 뭔가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도 있지만 은행이 순위권에 많이 들어가 있었죠.
놀랍게도 20위 안에 든 일본 기업 14개 중에 반이나 랭크된 은행 및 금융업이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 이익으로 은행과 금융업 역시 그 몸집이 엄청나게 부풀려진 것입니다.
여기에 증권회사들에서 자금을 지원받아서 쉽게 돈이 벌리는 주식시장에 개입해서 돈을 번 후에 정치 재계와 결탁해서 기업형 범죄조직을 운영한다든가 이런 일이 발생하기 시작을 했고요.
한 야쿠자 보스는 정치인의 후원을 받아서 부동산 회사를 설립해서는 1700억 엔을 증시에 쏟아붓고 1987년 한 해에 120억 엔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엄청난 사건이 있었는데요.
버블 시기 대표적인 사기 사건이 있었는데, 별명이 여제라고 불리는, 원래 술집을 운영하는 여자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술집 하나를 담보로 해서 여러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무려 '30조원'을 빌려서 주식에 투자를 했답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30조원... ㄷㄷ
그런데 버블이 꺼지면서 갚지 못하고 사정이 드러나면서 그 여자 사장은 체포됐는데요.
그런데 뭐... 이게 사기는 맞지만... 빌려준 은행들이 잘못한거 아닌가요? 참... 좀 그렇네요.
씀씀이가 과감해진 일본인들, 부동산과 미술품을 끌어모으다.
아무튼, 은행, 증권사, 기업, 일반사람들 모두가 엄청난 돈을 손에 쥐기 시작하면서 일본인들의 씀씀이가 엄청나게 커졌는데요.
여유로움의 상징인 레저 열풍이 전 국민에게 불었고,
특히 웬만한 회사원들도 고급 스포츠였던 골프를 치기 시작하면서 골프 회원권이 굉장히 많이 팔려나갔고요.
고급 골프장 회원권은 1억 엔에서 4억 엔으로 무려 4배나 가격이 뛰었습니다.
심지어 은행에서도 이걸 자산가치로 생각해서 골프장 회원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까지 했구요.
명품 브랜드의 고객 70% 정도가 일본인이었고,
특히 루이비통 가방은 여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한 달 정도 열심히 해서 살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반고흐, 피카소, 르누아르 등의 작품을 마구잡이로 사들여서, 미술품들의 가격도 몇십배나 폭등했고...
아무튼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국민 전체가 과소비를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말로는... 다음 시간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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