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어머님께 소설 (가사 기반)
GOD 어머님께 노래 가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어릴 적, 우리의 집은 늘 가난했다. 아침이면 흰 김이 피어오르는 작은 집에서 어머니는 도시로 출근하기 위해 일찍 떠났다. 나는 늘 집에 혼자 남아 있었다. 외식이란 단어는 우리 집과 거리가 멀었다. 친구들이 햄버거를 자랑하고, 가족과 함께 간 식당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고개를 돌리곤 했다.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면 나는 혼자 끓여먹는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처음엔 맛있게 먹었다. 따끈한 국물이 작은 위안을 주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라면도 오래되니 싫증이 났다. 하루는 어머니께 투정을 부렸다. "엄마, 라면 말고 맛있는 거 좀 먹으면 안 돼요?"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장롱 깊숙이 손을 넣으셨다. 손에 들려 나온 것은 구겨진 지폐 몇 장. 비상금이었다. "그래, 오늘은 자장면 먹자."
그날 우리 집 식탁엔 반짝이는 자장면 한 그릇이 놓였다. 나는 그릇을 들고 열심히 먹었다. 검은 소스가 입가에 묻을 만큼 맛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젓가락을 들지 않으셨다. 내가 물었다.
"엄마, 왜 안 드세요?"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난 자장면 별로야."
어린 나는 그 말이 진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어서 안 드신 게 아니었다. 나 혼자라도 배불리 먹길 바란 마음이었다.
중학교 1학년, 급식이 없던 시절엔 도시락이 필수였다.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점심시간마다 교실에 모여 뚜껑을 열었다. 하지만 내 도시락은 언제나 소박했다. 볶음김치와 계란 프라이. 나에겐 익숙했지만 친구들에게는 아니었다.
"야, 너네 반찬이 그게 다야?" 부잣집 아들 녀석이 내 도시락을 보며 비웃었다.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나는 창피해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녀석은 내 우는 모습을 보며 더욱 놀려댔다. 참을 수 없었다. 분노가 치밀어 주먹이 날아갔다.
그날 어머니는 일터에서 학교로 불려 오셨다. 아니, 끌려오셨다. 선생님 앞에서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말씀하셨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 녀석의 어머니 앞에서도 비셨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 침묵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방에 누워 혼자 다짐했다. 엄마를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자.
우리가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나는 함께 했다. 아버지가 우리를 떠난 뒤에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식당을 열 수 있었다. 어머니는 식당 이름을 정하며 내 이름과 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우리 이름이 붙은 곳이니 잘될 거야."
식당 개업날, 마을 사람들은 작은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어머니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었고, 웃음과 말소리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갔다. 식당에 남은 건 어머니와 나뿐이었다.
"엄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어머니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피곤하셨는지 조용히 잠에 드셨다. 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엄마를 편히 쉬게 해 드릴게요.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깨어나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가 떠난 후로도 식당은 계속됐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쌓아온 시간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사람들은 식당의 음식을 맛있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다.
어머니께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게 있다. "엄마, 사랑해요."
이제는 그 말을 할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 매일 외친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여전히 눈물이 난다. 하지만 나는 울다 웃는다. 어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 덕분에 나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엄마, 편히 쉬세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내가 잘 살고 있을게요. BY GOD
근데 왜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인건지. 국립표준국어원인지 뭔지 일 좀 똑바로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