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합의) 미국, 잘나가는 일본에 불만을 품다.
플라자 합의 도출 배경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이전 글에서 전후 일본 경제의 부활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샌프란시스코협약과 미국의 반도체 특허 오픈에 이르면서 일본 경기의 호황 가속화를 일궈내기까지의 역사를 살펴보았는데요. 바로 이후 시점부터 이어서 알아보시죠.
과거 안보와 경제를 맞바꾼 일본과 미국 두 나라의 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을 집어삼켜 버리겠다.'
그렇죠 70년간 세계 경제 패권을 미국이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제 패권이 위협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한테 넘어갈 수 있는 거네요.
1960년 미국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전자제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 휴대용 TV의 등장
바로 일본의 전자제품 회사였던 소니에서 나온 세계 최초의 휴대용 TV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볍고, 가격 또한 상당했죠. 그 때 당시 250달러입니다.
당시의 전자제품 시장은 더 작게 더 가볍게 더 혁신적으로 만드느냐 싸움이었는데,
당시 소니는 미국의 반도체 특허 기술을 도입해서 8인치의 작은 휴대용 tv를 세계 최초로 출시를 했습니다.
이 tv는 몇 달 만에 400만 대 이상이 팔렸습니다.
소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68년에는 독자적인 기술로 만든 컬러 tv까지 출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손바닥만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도 출시했죠.
특히 이 소니의 워크맨은 4억 대 가량이 팔렸습니다.
이렇게 일본의 전자제품은 편리함과 트렌드를 중시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서 미국과 세계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일쇼크와 일본 자동차 산업의 호황
하지만 결정적으로 미국 시장을 일본 제품이 장악할 거라는 위기의식을 촉발한 것은 따로 또 있습니다.
1970년대에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위기가 있었죠. 70년대 초 일어난 오일쇼크입니다.
이 오일 쇼크는 미국 시장에서 어떤 특정한 일본 제품에 대한 열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자동차죠.
일본 자동차 회사인 혼다가 고속도로에서 리터당 17킬로미터를 가는 연비가 아주 좋은 차를 최초로 개발을 했습니다.
이제 기름값이 비싸지는데 저 차 사면은 어? 기름 걱정 안 하고 탈 수 있겠네 이런거죠.
오일 쇼크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차들은 컸습니다. 큰 대형차들을 미국 사람들이 선호를 했죠.
근데 이제는 오일 쇼크로 휘발유값이 너무 오른 겁니다.
그러자 연비가 좋고 경제적인 일본의 소형차에 미국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한 겁니다.
급기야 1980년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 대국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본 제품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미국의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죠.
당시 미국은 오일쇼크로 엄청난 타격을 입으면서 물가가 15% 정도까지도 치솟았거든요.
거기다가 기업의 생산성까지 낮아지면서 경기 침체가 일어나고
실업자가 늘어나니까 미국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었죠.
일본 소형차에 밀려 타격을 입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겠죠?
분노 표출할 뭔가 대상이 필요한 거죠.
미국이 일본과의 무역에서 계속 적자가 발생을 한 거예요.
1964년까지는 미국이 흑자였습니다.
그랬는데 1965년에 그게 역전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미국의 적자가 엄청나게 뛰죠.
계속해서 무역 적자가 이렇게 늘어나니까 자국 내 정책만으로는 안 되겠다 해서
미국은 1985년도에 한 가지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입니다.
세계 무역의 불균형이 너무 심하다는 것, 이걸 해소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무역 적자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을 겨냥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달러 값은 내리고 엔화나 다른 나라의 통화는 그 값을 올리자고 미국이 제안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미국 사람이 이 볼펜을 만들었는데 1달러가 240엔이었어요. 이거를 일본 사람한테 팔아요.
그러면 일본에서 얼마를 받겠어요 240엔을 받죠.
그런데 플라자 합의 이후에 1달러가 120엔이 됐습니다. 1달러가 이제는 120엔 받으면 되죠.
옛날에 이걸 사려면 240엔이었는데 지금 이걸 사려면은 120엔밖에 안 돼요. 반값이죠.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은 일본 제품은 또 두 배로 비싸지는 거예요 미국 땅에서.
결국 미국이 노린 거는 일본 물건을 향한 미국인들의 지갑은 닫게 만든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지갑은 열게 한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어떻게 보면 일방적인 이런 방침인데 일본은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일본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바람대로 1987년 2월에는 1달러가 150엔까지 달러 값이 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일본은 왜 자신들이 손해를 보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미국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제품에 대해서 관세를 높이겠다고 할 수도 있었구요.
안보조약으로 인해서 미국이 일본의 방위비를 또 일부 떠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어쨌튼 일본으로서는 안된다고 반대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플라자 합의 후, 미국은 적극적으로 신토불이 캠페인을 시작했죠.
"일본 제품 사지 말고 우리 것을 사자."
그렇다면 이 플라자 합의는 효과가 있었을까요? 그 무역 격차가 해결되었을까요?
그게 놀랍게도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미 미국 사람들이 일본 제품에 너무 적응이 되어버린 겁니다.
일본 제품에 대한 구매 열풍이 쉽사리 꺼지지 않았죠.
미국이 이대로 포기할 리가 없죠. 결국 미국은 플라자 합의 이후 2년 뒤 다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이번에는 경제대국 7위까지 나라들이 모였습니다.
미국은 일본에서 미국 제품이 잘 팔리도록 일본 시장을 더 크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소비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금리를 낮추라고 합니다.
일본, 금리 인하의 시대~ 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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